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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 시장선거 실패 , 곧 국가의 실패입니다 – 16
  • 신형수 기자
  • 승인 2021.05.31 08:51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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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히틀러의 집권과정 중에 이루어진 독재화의 구체적인 과정과 2차 세계대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1월, 44세에 총리에 임명됐습니다. 임명과 동시에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준비합니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밤, 의회건물에 방화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공산주의자의 폭동 음모로 몰아 1만여 명을 체포하고 정치테러로 50여 명의 공산당원이 사망하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3월 5일 총선이 실시됩니다. 

감금, 납치, 고문, 암살, 불법적인 처벌 등 공포속에치러진 선거에서 나치당은 43.9%를 획득합니다. 이후 일사천리로 독재화가 진행됩니다.

총선 직후,18일만에 의회 내 반대파를 회유, 협박, 탄압해 수권법, 일명 전권위임법을 통과시킵니다.이 법은 입법부의 입법권을 총리와 내각에게 위임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도 마음대로 제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수권법은 히틀러와 나치 독재의 기반이 된 핵심 법 입니다.

4월에는 게슈타포라는 비밀경찰을 만들어 초법적인 지위를 부여했고,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각종 사회단체와 조직들을 나치당의 하부조직으로 만들었고 1933년 한 해에만 정치범 10만 명이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히틀러에게 반대되는 생각과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철저히 억압하는 과정에 게슈타포가 앞장섰습니다. 모든 법적 규제를 초월해 국가에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예방적으로’ 수사하고 단속하는 ‘예방적 체포권’을 행사했습니다. 

7월에는 나치당 외의 모든 정당을 불법화하는 법을 만들었고, 곧이어 의회의 전권을 나치당에 위임하는 선거를 치러 92.1%의 득표로 일당독재를 확립했습니다. 

나치당 정치깡패인 수백만 돌격대는 정권장악후 히틀러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돌격대장 에른스트 룀이 돌격대를 군대에 편입하고 귀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재분배할 것을 주장합니다.이에 군부와 자본가들이 반발하자 히틀러는 그를 제거합니다. 

1934년 6월 30일,돌격대 지도부를 뮌헨에 모이게 합니다.그날 새벽 나치 친위대가 급습해 쿠데타로 몰아 곧바로 처형하고 이어서 쿠데타 가담 누명을 씌워 3일 동안 전직 수상, 나치당 2인자 등 5백 명 이상을 암살했습니다. 

이른바 ‘장검의 밤’ 사건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히틀러가 멋지게 해냈다!”고 감탄했고 이를 모방해 수백만 명을 숙청했습니다. 

모든 정적을 제거한 후, 연로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갑자기 죽자 1934년 8월 19일 국민투표를 치러 88.1%의 찬성으로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에 올랐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독재화 과정이 불과 1년 5개월만에 마무리 됩니다.

히틀러는 청년시절부터 언론계와 거대자본을 유대인이 소유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확신을 가졌고 유대인은 오염된 민족으로 반드시 인종 청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35년 9월, 유대인 차별법인 뉘른베르크 법을 제정해 독일 민족과의 결혼과 성관계를 금지하고 유대인 거주 지역을 분리했고, 국민의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에서 6백만 명의 유대인을 독가스로 학살했습니다. 

홀로코스트란 불로 태운 제물, 번제물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사람이나 동물을 대규모로 죽이는 행위지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독재를 확립한 히틀러는 독일 게르만민족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기 때문에 독일인은 더 넓은 영토에서 쾌적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국민들을 세뇌시켰습니다. 

한 독재자의 광기는 국민의 광기로 변해갔습니다. 대공황에 절망했던 국민들은 위대한 독일을 약속하는 히틀러의 주장에 열렬히 동조했습니다.

군수공장을 가동하고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경제가 살아나자 실업률은 낮아졌고 국민들은 위대한 독일 민족에 대한 자부심으로 점점더 열광하게 됩니다.히틀러를 메시아,구세주로 믿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히틀러는 우월한 독일 국민의 유럽 지배를 명분으로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 시작됐고 독일은 폴란드와 프랑스 및 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러시아 침공 후 1943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하고, 1944년 미.영 주도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반격하자 전세는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연합군이 베를린을 포위해오자 지하 벙커에서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인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 직전, 56세에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약 6천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전 세계의 재앙이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독일은 베를린 건물의 81%가 파괴되었고 전쟁 후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다가 1990년에 통일됐습니다. 

히틀러는 총칼로 권력을 탈취한 게 아니라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습니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 세력을 살해하고 의회를 마비시키면서 철저한 독재를 만들어 나갔지만, 이 또한 형식적으로는 법적 절차를 따랐습니다.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고, 수권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나치 독재를 확립한 1933년을 독일 민주주의가 사망한 해라고 합니다.

다음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직전 사임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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